[무아의 공간] #1:한국화 작가가 테이블을 만든 이유는?

무아 | @mooamood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한 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인테리어 건축과 전시 디자인 석사를 마쳤다. 현재 시애틀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해 오고 있으며 한국화를 기반으로 회화, 조각, 아트퍼니처, 오브제, 텍스타일 작업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작업으로 러브 콜을 받고 있다. RISD Nature Lab, 국립중앙도서관, 이대서울병원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무아 작가님 안녕하세요! 박제언 큐레이터입니다. 작가님과 함께 대담을 시작하게 되어 무척 기쁘네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작가님에 대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저는 한국화를 기반으로 회화, 조각, 오브제, 텍스타일 등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하며 작업하는 작가입니다. 자연, 색, 몸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유동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다양한 필드에서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작업을 하고 계시군요. 요즘은 작가들이 여러 장르를 융합하여 많이 활동하는데, 무아 작가님은 다원 예술을 하는 예술가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무아 작가님의 전체적인 예술의 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학창시절 ‘한국 교육과정은 왜 한국화 보단 서양화 위주로 다루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늘 던지던 학생이었어요. 한국적인 것을 제대로 알아야만 작가로서 정체성의 기반을 확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화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미술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예고를 가면 배울 수 있다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그렇게 선화예고에 진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접하게 되었어요.
한국화에 특히 매료되었던 이유는 바로 우연성과 통제불가능성 때문이었어요. 서양화, 디자인, 조소 등의 분야는 계획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반면, 한국화는 먹이 한지에 스미고 번지는 과정에서 예측불가능한 효과가 우연히 나오기도 하고 동양 재료가 주는 자연스러운 미감 덕분에 한국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어요.
한국화의 가능성을 더 탐구해 보고 싶어 2011년 이화여대 미대로 진학하게 되었고, 2016년에 대학원을 진학하면서부터 평생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 같아요. 작가가 아닌 다른 선택지도 항상 있었지만, 작업으로 고민하고 상상 속에만 있던 꿈을 작업으로 실현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이화여대 재학 당시 수묵화 작품
락, 2013, 한지에 먹, 밀가루, 162 cm x 130 cm
춤, 2013, 한지에 먹, 밀가루, 162 cm x 130 cm

2014 단원미술제 전시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보면 강백호라는 주인공이 감독님으로부터 퇴장 요구를 받았을 때, ‘감독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저는 지금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다시 코트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이 유명한 장면 중의 하나가 된 이유는 사람마다 각자 자신만의 영광의 순간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무아 작가님은 오랜 기간 작업을 해오시면서 개인전은 물론이고 큰 무대나 공모에서 활약하신 적도 있고 해외 전시를 하신 적도 있어요. 작가 생활 중 무아 작가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최근 시애틀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가 제 작업 인생 중 가장 영광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미국이라는 땅에서 다양한 배경의 관객들과 만난 것이 처음이었고, 언어, 나이, 문화를 뛰어넘어서 미술이라는 공통된 언어로 전 세계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예술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그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제 작품을 통해 한국적인 색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뿌듯하고 보람찼어요.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작가 생활에 있어 가장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나만의 섬에 갇혀서 고독하게 작업하는 거였어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데 사회적인 영향력을 펼치지 못하고 혼자서만 작업하니 점점 외롭고 생각의 폭도 좁아지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이번 개인전을 통해, 저의 예술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에게 때론 만남과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하고 예술을 통해 사회적인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어 매우 뜻깊었습니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024 Table of Thoughts 개인전
최근 개인전을 보지 못한 독자분들도 있을 텐데 전시에 출품된 작업을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전시를 통해 작가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어떠한 방법으로 작업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생각을 지탱하는 테이블 (Table of Thoughts)라는 주제로 6월에 개인전을 했는데요, 테이블을 전시 주제로 정하게 된 계기는 여성의 나체를 닮은 나무 가구들이 한 식물원에 쭉 진열되어 있는 몽환적인 꿈을 반복적으로 꾸면서부터였어요. 저는 항상 기괴한 꿈을 많이 꿔서 침대 테이블 옆에 스케치북을 놓고 일어나자마자 꿈에서 본 것을 그려요. 꿈에 카메라를 가져갈 수 없으니 반쯤 깬 몽롱한 상태로 스케치하며 조금이라도 남겨두는 거죠. 나중에 맨정신에 스케치를 보면 아이가 그린 것처럼 순수하고 원초적인 형상이 재밌게 느껴지곤 해요. 이 방법이 본능적인 무의식을 잘 끌어낸다고 생각해서 매일 이런 식으로 드로잉하고 있어요.
그렇게 탄생한 드로잉을 실제로 만들어 현실 공간 속에 놓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Body Table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어요. 가구, 특히 테이블은 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 반영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손때가 타는 오브제이다 보니, 현재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그대로 테이블을 통해 보이는 것 같아서 흥미로워요. 여성의 몸을 닮은 테이블을 볼 때, 마치 제 몸과 동일시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내 생각과 영혼들을 잠시 내려놓는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개인전에서 총 4개의 Body Table과 십여 점의 Sculpainting(조각회화)을 선보였는데, 각각의 테이블마다 일상의 사물들이 올라가 있는 형태를 띤 전시를 구성했어요. 전시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본인의 삶을 지탱하는 생각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때론 인생의 희로애락일 수도 있고, 꿈과 희망일 수도 있겠죠. 무거운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는 치유의 시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일상의 사물을 지지하는 Body Table
그렇군요. 지금 작가님이 말씀하신 잠이 덜 깬 몽롱한 상태에서 드로잉을 했다는 얘기가 마치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하는 초현실주의 자동 필기법이 떠오르게 하네요. 작가님의 무의식에는 왜 여성의 몸이 자주 등장하나요? 여체 형상을 한 테이블이 어쩌면 여성의 몸을 도구화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작가님의 작업은 그런 느낌이 든다기보단 화려한 색채 요소에 의해 오히려 여성의 몸이 굉장히 강렬하고 파워풀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무의식 속에서 여성의 몸이란 어떤 의미이고 Body Table이 일상에 놓였을 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우리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인지하려고 하지 않아도 매달 월경을 한다거나 임신과 출산을 겪는 등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내가 여성의 몸을 지녔구나.’라고 인지할 수밖에 없는 신체적인 조건을 타고나잖아요. 여성의 몸을 지닌 이상 변화무쌍한 호르몬과 감정의 변화를 마주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하면 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흐름을 예술로써 승화시키고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작업 속에 여성의 몸이 자주 등장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여성의 신체 변화들이 어떻게 보면 여성만이 가진 굉장한 특권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여성의 몸을 타고난 제가 당사자성을 가지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비로소 다른 여성과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생각했고,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 변화를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2015 꿈에서 본 바디 테이블 드로잉
제언 큐레이터님께서 제 작업 속 여성의 모습을 파워풀하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바버라 크루거가 “Your body is a battleground’라고 말했듯이 여성의 몸은 전쟁터이자 논란의 중심이라 이 주제로 작업하는 것이 늘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 작업 속 등장하는 여성상이 강하게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시각적으로 화려한 색감 덕분인 것 같습니다. 화려한 색은 여성의 존재감과 정체성이 도드라지게 보이게 함과 동시에 신체 실루엣을 시각적으로 교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양가적인 면에 매료되어 색을 즐겨 씁니다.
색에 대한 영감은 주로 자연에서 얻는데요, 저는 특히 생태 피라미드에서 생물이 생존 전략으로써 색상을 사용하는 방식에 매료되었어요. 어떤 생물은 ‘보호색’을 사용하여 주변 환경과 유사한 색상으로 위장해 자신의 위치, 정체성 및 움직임을 숨기기도 하고, 어떤 생물은 ‘경계색’을 사용하여 포식자에게 경고하기 위해 눈에 띄는 색상과 독특한 패턴을 사용해요. 특히 이 후자의 전략은 무척 아이러니한데, 개구리나 무당벌레 같은 파충류, 곤충이 이러한 색상 전략을 사용해 생존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사회 속 저 자신과 동일시 하게 되었어요.
다시 말해서,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에서 개구리는 위협적인 뿔도 없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지만 색깔만으로 생존전략을 구축하는 모습이 마치 저 자신이 사회 속에서 생존해 나가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느껴진 거죠. 사회 속 여성의 위치를 생태 피라미드로 치환해서 생각해 보면, 3차 소비자라기 보단 1차 소비자 정도 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내가 만일 1차 소비자 레벨에 위치한 개구리 종이라면, 보호색을 사용해서 주변 환경에 그저 묻히는 생물이 될 것인지, 아니면 경계색을 사용해서 오히려 존재감을 화려하게 드러낼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저는 후자를 선택할 것 같아요.
저는 여성의 몸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여성의 몸을 지닌 우리가 사회문화적 맥락에 어떻게 적응하고 사회화되는지, 정체성을 어떻게 재형성하는지, 그리고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구축하는지에 관심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일상에서 Body Table을 바라보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색깔이나 이야기는 무엇일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으면 하는 것이 작가로서 저의 작은 바람이에요.

Body Table(Tropical), 2023, 나무에 분채, H 68 x W 68 x D 67.2 cm
오늘 대화에서 재밌는 포인트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자궁의 주기에 따라 몸이 변화하는 것을 오히려 파워로 인식하고, 자연에서 관찰되는 생존 전략과 유사점을 찾아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 점이 인상 깊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무아 작가님의 전시를 보러 온 분들에게 용기와 공감을 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상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아요. 다음 이 시간에도 작가님의 멋진 이야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글 | 박제언 @curator_jenny
박제언은 2011년 아트센터 나비 연구원을 시작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사비나미술관을 거쳐 플랫폼엘 아트센터에서 선임 큐레이터이자 학예팀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AR, VR, AI, 로보틱스 등의 최신 기술을 접목한 다원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프로젝트 및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한국여성미디어아티스트 기획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2019, 호림아트센터), 뉴미디어와 현대무용을 결합한 미디어 퍼포먼스(2019, ZER01NE), <Break infinity Build>(2021, 메타버스 퍼포먼스)등을 기획하였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국제교류 전시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다시한번 말씀해주세요>(2022, DDP)외 다양한 프로젝트 및 전시를 기획 총괄하였다. 다원 예술 그룹 도타비(dotavi), 미디어 문화연구 모임 ‘부업(VUUP)’의 공동운영자이며, 뉴미디어 솔루션기업 PUBLE의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다.